헤럴드에 있는 기사인데, 너무 재밌게 보았으나... 연재라 띄엄 띄엄 찾아 읽어야 하는게 귀찮아서, 한번에 묶었습니다. 출처는 역시 헤럴드이며, 저에겐 이 기사에 대한 권리는 없음을 밝힙니다. 



 ①잊혀질뻔한 그들, Occupy Korea!…분노는 나의 힘

청년층과 베이비붐세대 사이에 끼어 ‘잊혀져 가던’ 30대 후반~40대 중반의 ‘F세대 (Forgotten generation)’가 한국사회를 움켜쥐었다.

선배인 근대화, 민주화 세대에 가려지고, 환경적으로는 IMF와 장기 저성장에 짓눌려 살아온 세월동안 숨죽이던 F세대가 2011년, 그간 쌓아둔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F세대가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때 무소속 후보에게 80%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작년 11월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F세대 즉 1966~1974년생의 인구는 748만4206명으로 전체인구의 15.6%를 차지하며, 점유율 14.5%로 2위인 베이비붐세대(1955~63년생=694만9972명) 보다 53만4234명 많다. 이른바 ‘제 2차 베이비붐세대’이다.

IMF구제금융기에 사회 초년병으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커진 자녀 사교육 부담과 대출금 압박 속에 어렵게 어렵게 집 장만했더니 상투를 잡아 ‘하우스 푸어’가 된 이들이 이제 고단한 삶을 초래한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무기는 ▷‘세대 이기주의’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구조에 대한 분노(Fire) ▷후배인 88만원세대의 희망과 기성세대의 논리를 모두 고려할 줄 아는 포용력(Fusion) ▷새로운 소통과 연대감 조성 도구의 장악력(Facebook) 등이다. 최근 랭키닷컴의 페이스북 이용자 실태조사결과, 30~40대가 60%를 점했고 이 연령대 점유율은 증가일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뭐든 F세대에게 물어보라’는 말처럼 가공할만한 인구수(Formidable members) 역시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 지도층들이 유념해야 한다.

지난 10.26보궐선거때 처럼 ‘선거의 해’인 내년 총선,대선에도 ‘2040연대’ 즉, F세대가 베이비부머 자녀인 ‘에코부머(ecoh-boomer)’, ‘88만원 세대’ 등 20~30대와 동질감을 느끼는 경향이 이어진다면 기성정치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F세대의 맏형인 1966년생부터 새로이 선거권을 얻는 1992년생까지의 연령층이 전체 유권자의 51%를 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년 두차례 선거를 통해 1987년에 만들어진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에 종언을 고할 것이며, 평화와 공정, 상식과 상생의 실질적 민주주의인 ‘2013년 체제’를 만들고 10년후 이 체제를 이끌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기업의 부장이나 차장, 20년차 자영업자, 작업반장 또는 팀장급인 이들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나이 마흔을 넘기거나 마흔에 가까워지면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집권세력에 호응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라는 점이다.

F세대가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현대사회의 변동 요인, ▷정보화 ▷개방화 ▷세계화 ▷다원화 등 네 가지를 모두 갖춘점 역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때 8비트 컴퓨터를 배운 뒤 청년기 PC통신을 거쳐 스마트시대에 이르기까지 정보화 발전을 모두 경험했고 나이 마흔에도 20대 못지 않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임을 자랑한다. 키보드가 데모보다 강하다(The keyboard is mightier than the demonstration)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청년기 사회주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적대,냉전주의를 청산하고, 실용주의, 신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주의 등을 다양하게 경험했으며, 대학졸업할 무렵엔 세계화 개방화 자유무역의 대세속에서 어학연수라는 신조어를 만든 세대이다. 이들의 다원주의적 상상력의 힘은 ‘한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F세대에게 반골 기질만 있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다원화 개방화를 경험하고 자본주의적 평등을 잘 아는 이들은 ‘생물’같은 성향을 지닌다. 위정자들이 하기에 따라 언제든 표심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다. 뚜렷한 집단의식 없이 ‘상식’에 준거해 행동한다는 점 역시 그렇다. F세대는 기존의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건설할 ‘2013년 체제’는 승자독식이 아닌 모든 연령층이 지속가능하고 합리적인 노동의 과실을 얻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산적 복지’의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기성대세의 이기주의가 계속되고 지금의 정책마인드가 아무런 반성 없이 유지될 경우, 훗날 프랑스,영국,미국에서처럼 연금,등록금제도,승자독식 구조에 대항하는 2040폭동<사진>이 국내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F세대을 바라보는 시선중에는 ‘철없는 마흔’이라는 기성세대의 비아냥도 있다. F세대 스스로 사회안정성을 도모할 ‘점잖은 수권능력’을 길러야하는 이유이다. 헤럴드경제는 송년특집으로 2011년 우리사회의 중심으로 데뷔하고, 2012, 2013년 사회변동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F세대’를 연속기획물로 집중 조명한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용어설명 F세대= 베이비붐세대 보다 50여만명 많은 최다 인구층(Formidable members)이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잊혀진(Forgotten)세대’, 1966~1974년생 750만명을 지칭한다. 힘겨운 청년~중년기를 보내면서 ▷분노(Fire)의 내재 ▷신구세대의 가교(Fusion) ▷소셜미디어 장악(Facebook) 등 특징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 신주류. ‘1987년체제’에 대응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전반의 변동을 몰고올 공정,상생의 ‘2013년 체제’ 주역으로 꼽힌다. <비교> ▷F세대 1966~74년생 748만 4206명 인구점유율 15.6% ▷베이비붐세대 1955~63년생 694만 9972명 인구점유율 14.5%



<연령별 인구수>

▷F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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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생 787,014

73년생 859,717

72년생 844,811

71년생 861,241

70년생 899,979

69년생 857,985

68년생 852,405

67년생 768,935

66년생 752,119

-----------------



▷베이비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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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생 784,643

62년생 853,520

61년생 850,939

60년생 868,684

59년생 788,910

58년생 750,910

57년생 731,220

56년생 658,407

55년생 66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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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의 마흔, F세대> ②탄생: 보릿고개 너머 희망의 젖병 물고 자란 근-현대 경계인

2011-12-19 01:07

         

우리나라의 현재 연령별 인구를 유아에서 고령자 순으로 옆으로 누이면 오른쪽부터 크게 네 개의 봉우리가 등장한다. 첫번째 등장하는 봉우리가 바로 ‘베이비붐’ 세대다.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과 함께 55년부터 63년까지 출산율이 급격히 높아진 시기로 현재 전체인구의 15% 가까이를 차지하는 넓고 높은 봉우리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에 뒤이어 곧바로 ‘더 높은 봉우리’가 자리잡고 있다. 1966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최근 사회변동의 중심에 선 F세대(1966~74년생 최다 인구층)다. 세번째 봉우리는 1979∼1985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의 자녀들로 ‘에코세대’이다. 이른바 ‘88만원세대’가 포함돼 있다. 넷째 봉우리는 F세대의 자녀들로 외동이 많아 높지는 않다.

지난해 통계청이 내놓은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F세대의 총 인구는 748만명으로 베이비붐 세대(695만명)보다 50만명 이상 많다. 태어날때 두 세대의 숫자는 엇비슷했지만 40세 전후의 F세대는 10여%, 50줄에 접어든 부머들은 20여% 사망했다.

학문적으로 ‘베이비붐’이란 아이 셋 이상을 낳는 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되는 때를 뜻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1955년부터 1974년까지의 20년이다. 다산(多産)시대의 긴 여정은 공유하지만 부머와 F세대의 성장배경과 여정은 사뭇 다르다.

우리의 출생통계가 1970년에 제대로된 틀을 갖췄기 때문에 F세대가 왜 많이 태어났는지에 대해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당시 경제적 변화가 F세대 다출생의 한가지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이들을 ‘제2차 베이비붐 세대(68~74년생)’라고 규정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빈곤의 늪에서 빠르게 벗어나면서 출생아수가 매년 80만명을 넘은 시기”라고 설명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다출생이 종전에 대한 ‘정치사회적’ 안심감에 기반을 하고 있다면, F세대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앞으로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경제적 안심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1962년 등장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1970년의 새마을운동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태동기에 기대감을 안고 태어난 아이, 즉 보릿고개를 넘고 희망의 젖병을 물고 자란 세대들인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맨 근대, 민주주의를 정착한 현대의 경계인이다.

F세대는 베이비부머와 함께 현재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기둥이다. 양 세대와 그 사이에 낀 1964,65년 생을 합하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1600만명의 거대집단이 된다. 두개의 봉우리 즉 ‘쌍봉세대’로 통칭되는 이들은 전국 토지의 42%, 건물의 58%, 주식의 20%를 보유한 한국경제의 주도세력이다. F세대가 10살 전후이던 1970년 284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2만591달러로 70배 이상 높아졌고 120위권이이던 국민소득 순위는 34위까지 높아졌다. 한국은 세계 무역규모 8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F세대의 중심인 1970년생은 단일연령 가운데 최다인 90만명이 생존해 있다.

하지만 F세대의 의 80%이상은 집없이 전세, 월세, 사글세 생활을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자녀를 위해 월평균 25만원 정도의 사교육비(초등학생 24.5만원, 중학생 25.5만원)를 쓰고 있다. 맞벌이가 당위로 다가온 첫 세대이기도 하다.

F 세대는 가장 큰 난관은 ‘노년’이다. 통계청의 ‘2010년 생명표’에 따르면 이들에겐 평균 38.24~45.82년의 인생이 남아있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2030년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인구가 5216만명으로 정점을 찍는 해다. 현재 73% 수준인 생산가능인구는 60% 선으로 줄어들고, 대한민국이 스위스 이탈리아 등과 함께 마이너스 경제성장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해(UN분석)이기도 하다.

지난해 통계개발원은 ‘베이비붐세대의 현황.은퇴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베이비부머와 제2차 베이비부머(F세대), 에코세대의 세 인구집단이 65세에 이르는 시점인 2020년, 2030년, 2044년에 노인부양비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과 이들 후세대에 대한 대책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다. 나아가 F세대의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우리사회 목표,정치체제,국정마인드,민주주의 방식 등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홍승완 기자 @Redswanny> swan@heraldm.com

F세대의 중심이자 국내 단일 연령 최다 인구인 1970년생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될때 태어났다. 물류의 대동맥이 완성된다는 것은 제조업이 살아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하나 둘 영글어갈때 그들은 태어났지만...<헤럴드미디어 디지털DB>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살기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는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경제회생의 활력소였다. 돈을 벌기 위한 부모님의 땀흘리는 모습, 민주화를 향한 형,누나들의 거리시위와 희생을 보고 자란 F세대는 청년기에 결국 고도성장의 부작용에 따른 아픔을 온몸으로 뒤집에 쓰는데... <헤럴드미디어 디지털DB>


③여정: 조변석개 교육제도, IMF한파 ‘취업재수’, 시장선 상투만...

2011-12-19 01:20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에 접어든 F세대(1966~74년생)의 지난 삶은 억세게 운이 없는 세월이었다. 희망보다는 좌절이 많았던 탓이다. 선배 세대가 시스템을 만들고 먼저 밟고 간 자리에 F세대를 위한 향연은 없었다. 축적된 좌절은 분노로 바뀌어 2012년 대한민국 새틀짜기의 동력으로 바뀔 태세다.

잘 살아보자는 구호와 함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이던 그들의 어린 시절은 베이비 붐 세대보다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그러나 극한의 배고픔을 면했을 뿐 풍요로움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학창시절은 민주화 열풍과 올림픽이라는 두 역사적 사건의 어울리 법 하지 않은 조합 속에서 흘러갔다. TV에서는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이벤트의 화려함과 새롭게 조직된 노동조합의 투쟁가가 묘하게 교차했다.

대학생이 되는 과정도 힘겹기만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학력고사 제도가 ‘선 시험, 후 지원’에서 ‘선 지원, 후 시험’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능력시험으로 대체됐다. 재수라도 할라치면 이듬해 성적이 오를까를 걱정하기보다는 대입제도가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다.

대학생활은 이른바 ‘386’ 선배들이 휩쓸고 지나간 민주화의 끝자락에서 시작됐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캠퍼스와 거리를 뛰어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외쳤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 문호가 열리면서 투쟁 동력은 이내 사라졌다. 민주화 운동의 끝자락이었다.

대학생활을 중단하고 군대를 다녀온 이후 느낀 상실감은 더 컸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대학교를 졸업만 하면 추천장을 몇 장씩 받아 기업을 골라 가던 시절은 더 이상 없었다.

토익성적으로 대변되는 영어, 4년 동안의 학점, 자격증, 사회봉사활동 등 이른바 스펙이 없으면 취업은 어려웠다. 대학교 들어와 사람 만나고, 운동권 언저리를 오가며 스펙과는 담을 쌓았던 대부분의 F세대들은 ‘취업 재수’라는 신조어의 첫 희생양이 됐다. 3저호황의 종막 그리고 이어진 IMF구제금융기의 악령이 할퀸 것이다.

이미 취업을 한 80년대 후반 학번은 그래도 사정이 나았다. 취직해서 차도 사고, 학자금도 갚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은 2~4% 안팎으로 떨어졌고 입사 3~4년이 지났을 무렵, 외환위기를 맞았다.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른바 ‘IMF세대’로도 불리는 90년대 초반 학번의 고통은 더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맞아서였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사람을 뽑는 기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백수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하면서 희망이 엿보이는 듯했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직장을 잡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달콤한 꿈에 부풀어 있을 무렵, 이번에는 집값이 폭등하면서 좌절을 맛본다. 수입은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는데 선배들이 키워놓은 사교육시장에서 내 아이만 도태시킬수도 없었다.

10년 가까이 아끼고 아껴 모은 돈에다 대출을 왕창 받아 가까스로 집을 사니 또 다른 재앙이 시작됐다. 2008년 상반기를 정점으로 집값이 속절없이 떨어져 집을 담보로 빌린 돈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져 버렸다. 상투를 잡은 것이다. 마치 1999년 벤처붐때 윗세대들이 해먹고 난 뒤 막차 탄 때와 비슷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이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사교육 열풍이 기다리고 있었고, 오르는 물가에 담보대출 이자까지 겹치면서 저축은 고사하고 생활마저 빠듯해졌다. 대출금 갚기-생활고의 악순환 속에, 역대 모든 시대의 40세 중 상대적 빈곤이 가장 큰 ‘하우스 푸어’가 되고 만다.

이미 기반을 닦은 80년대 초반 학번 선배들의 안정된 모습을 보면서 근사한 화이트 칼라를 꿈꿨지만 F세대의 결과는 빈곤하고 무기력한 화이트 칼라에 불과했다. 선배들이나 후배들 눈에 F세대는 그저 어정쩡하고 명확한 목표와 뚜렷한 신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 없이 사회에 편입된 것만 같았던 잊혀진 그들, F세대가 꿈틀대고 있다. 40여년 좌절에서 벗어나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무기로 대한민국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을 서두르고 있다. 올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시장으로 이끈 힘도 다름 아닌 F세대에서 나왔다. 이제 F세대는 과거와는 다른 더 큰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충희 기자 @hamlet1007> hamlet@heraldm.com

F세대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취업난 속에 ‘스펙’ 경쟁이 본격화된다. 때마침 개방화,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그들은 어학연수 1세대를 기록했다.

IMF 구제금융기의 한파는 사회초년병이거나 취업준비생이던 F세대에게 취업재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험난한 삶의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첫 단추가 비뚤게 꿰진것이 그들의 탓인가.

베이비부머 선배들 보다 5년가량 늦게 집을 샀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금 부담은 커져만 갔다. 이른바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것이다


④58 vs. 70년생 개띠: ‘일그러진 영웅’ 58년생과 ‘행복이 성적순 아닌’ 70년생

2011-12-19 01:22

         

58년 개띠의 삶과 70년 개띠는 위-아래 양쪽으로 좋은 소리 못듣는 ‘낀 세대’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살아온 시대적 흐름과 경험은 확연히 다르다.

58년생(77학번)은 민족주의자 조봉암이 간첩 혐의로 구속되는 등 메카시 열풍이 지배하던 해, 태어나 긴급조치로 암울하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청년기에는 전두환 신군부에 저항해 1980년 민주화운동의 핵심동력이 됐다. 1987년 6월항쟁때엔 넥타이를 메고 나서면서 시민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일이나 하지 동생들 시위에 왜 끼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F세대(1966~74년생)의 중심인 70년생(89학번)은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경제부흥기에 출생해 제국주의식 교복, 요즘 중고생의 신사 숙녀복형 교복 등 한번도 교복을 입어보지 못했으며, 선배들이 민주화운동을 마무리하고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시기 청년기를 맞았다. 386세대와는 달리, 화염병 등 완력에 의한 변화엔 그리 익숙치 않다.

영화로 치면 58년 개띠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상황에서 성장했고, 70년 개띠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등장인물과 비슷한 정서를 보유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58년 개띠는 부모를 모시면서도 ‘88만원세대’인 자식들을 어느정도 건사해줘야 하는 이중고를 겪지만, 70년생은 모시지도 않고 부양받지도 않는다는 점은 다르다.

경제성장에도 주역이 됐던 58년 개띠는 현재 기업의 중역을 맡고 있거나, 수차례 경제위기때 정든 직장에서 떠나 자영업을 한다. 은퇴를 2년가량 앞두고 있지만 ‘오륙도(오십육세까지 직장에 붙어있으면 도둑)’라는 풍자가 남의 얘기로 듣리지 않는 ‘백수’도 3분의1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0년생은 어렵게 취직한 후엔 내집마련 저축 보다는 차에 관심이 많았다. 자유와 낭만, 다원주의를 지향하지만 50~60대 선배들의 사회 운영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으며, 부동산 벤처붐 등 앞세대가 떡고물을 챙겨먹고는 자녀 사교육비 증가 등 부담만 남겨놓은 점은 늘 불만이었다. 이들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때 2030과 합세해 무소속 후보에 표를 몰아줬다. 몇몇 구닥다리 선배는 ‘마흔이나 먹고 동생이나 조카같은 사람들과 똑같이 논다’고 꼬집기도 했다.

두세대 모두 선배들한테는 ‘철없는 성년’으로 배척당하면서도 후배들과 친하려고 했던 것 같다. 고교평준화 1세대로서 대입때만 치열했을 뿐 고입,취업 등은 수월했던 58년 개띠들은 대학 예비역4학년때 신입생이던 65년생과도 어울렸고, 70년대생의 제일 고참이자 비교적 손쉽게 취업한 마지막 연령대인 70년생은 동생들과 대중문화, 세계화마인드 등을 공유했다.

하지만 군부독재 타도가 가장 큰 민주화의 목표였던 58년생은 후배들의 통일,자주화,노동해방 주장을 ‘성급한 생각’으로 여기며 생각의 차이를 노출했다.

‘상식이 통하고 문화가 넘치는 사회’를 지향하던 70년생은 흑백논리에 익숙한 ‘386세대’ 형들 보다는 융통성이 있었지만 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추진력은 보여주지 못했고, 자신들의 대학졸업때와는 달리 취업난을 겪던 후배들이 도구적 지식 매몰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두 연령 모두 100만여명이 태어났지만,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남성 자살률이 가장 높은 58년생은 75만명 정도가 생존해 있고, 70년생은 89만명이 살아있다. 주목받는 생년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그들만의 결속력이 강하다.

<함영훈 기자 @hamcho3> abc@heraldm.com

58년생 개띠 무렵의 연령대가 청소년기에 겪었음직한 내용을 담은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 장면.

자유를 희구하는 1970년 전후 태생 청소년들의 꿈을 그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한 장면. 남자주인공 김보성은 1966년생, 이미연은 1971년생이다.


⑤키워드: IMF, PC통신, 올림픽, 캥거루족, 촛불시위...

2011-12-19 01:00

         

40세 전후 F세대(1966~74년생)는 독특한 시대상황을 겪으면서 많은 키워드들을 양산해낸다. 학력고사 종결자, 어학연수 개척자, 캥거루 세대 신호탄, PC통신 주도자, 소련 붕괴에 따른 가치관의 재정립, 촛불시위 등등.

이들은 사지선다 암기형 학력고사의 마지막 세대이다. 1962년부터 1993년까지 10년 넘게 이어진 대입 시험이다. 이른바 ‘학고 세대’. 쉬웠다 어려웠다, 이 제도, 저 제도를 섭렵하는 와중에, 합격률을 높여야 하는 고3 담임 선생과 명문 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 사이의 대학 지원서를 놓고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또 ‘어학연수 1세대’이다. 80년대 후반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가 됐다. 당시 해외 이민이 많았으며, 이후 영어 실력이 취업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어학연수를 떠나는 대학생이 많았다. 아울러 토익(TOEIC) 시험이 입사전형요소가 되면서 영어 실력의 바로미터로 자리잡았다.

생산, 근검 만큼이나 ‘소비’가 미덕으로 자리잡는 첫 세대이기도 했다. 산업화의 열매를 처음으로 향유했으며, 87년 이후 민주화도 어느정도 진척되면서 다양한 소비에 눈길을 돌릴 수 있었다.

당시 대학에는 외국 담배에 대한 저항감이 많았는데, 이도 조금씩 무뎌지며 말보루, 마일드세븐 등 외제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우리의 국격을 높이기도 했지만, 근검시대와 소비시대를 구분짓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F세대는 ‘소비시대’의 첫 소비자였던 것이다.

‘PC통신’도 빠트릴 수 없는 F세대 용어 가운데 하나.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을 통해 전국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열광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은 PC 앞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으며, 다양한 온라인 동호회 활동의 출발이 됐다. 이런 문화가 이후 인터넷을 통해 더욱 확대됐으며, 지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세계사적으로는 91년 ‘소련(Soviet Union)의 붕괴’가 이들의 이념 지표를 흔들었다. 80년대 중반 학번들로부터 직ㆍ간접적으로 비판적 성향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지만, 소련이 몰락하면서 기존의 운동권 이념을 부정하게 된다. 결국 F세대는 포스터 모더니즘적, 탈이념 다원주의, 문화주의로 다양한 삶의 무기를 갖추게 된다.

F세대 부터 겪기 시작한 취업난은 오늘날 ‘캥거루 세대’의 신호탄이 됐다. 성인으로서 학교를 졸업했으면서도 부모의 품 속에서 당분간 더 자랄수 밖에 없는 처지는 그들 스스로 만든게 아니었다.

경기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이 가능해지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면서 40세 안팎의 이들 세대도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은퇴)’ 등의 신세에 내몰리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금융구조조정 당시, 서른 갓 넘긴 나이에도 은행에서 자의반 타의반 퇴직해, 창업투자사, 부띠끄, 투자자문회사를 차린 젊은 금융인이 적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들 세대의 단면을 드러내는 키워드는 많다. 2002년, 2004년, 2008년 ‘촛불집회’에 이들은 30대 또는 40대 가장이면서도 집회 현장을 찾곤했다. ‘키보드’에 익숙한 세대이지만, ‘큰 마당’이 만들어지면 마음속 응어리를 푸는 장소로 활용했다.

영어에 친숙한 어학연수 1세대 답게 영어로 된 용어들도 그들의 여정을 둘러싸곤 했는데, 인터넷(Internet), 벤처(Venteur) 등은 F세대가 주도하던 키워드였다. 벤처붐이 꺼지면서 쪽박을 찬 F세대도 적지 않았다.

<박도제 기자 @bullmoth> pdj24@heraldm.com

1987년 전국적으로 벌어진 6월항쟁 1년 뒤엔 88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선진국 진입에 들떠있던 이 시기 청년기를 맞은 F세대는 올림픽후 조성된 ‘소비시대’의 첫 주인공이었다.

청년기부터 고단한 20년을 보낸 F세대는 키보드로 뜻을 공유한뒤 마당이 만들어지면 ‘촛불집회’라는 형태로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다분히 전략적이고 일사불란한 대오를 형성하던 386 운동세력과는 달리, 명확한 정세판단과 뚜렷한 목표를 갖지는 못했다. <헤럴드 디지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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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서재에 있는 냉장고를 끄면서, 필름을 거실 냉장고로 이전을 했습니다.
재고 파악겸, 서재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지요.

재고 파악을 하다보니, 정말 그동안 사진을 오랫동안 안찍었구나.. 하는것이 새삼 느껴질 정도로
기간들이 촉박하거나 이미 지나버린 필름들이 가득이었습니다.

그래서 필름을 억지로라도 소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d76을 쓰면서 t-max 용액과 비교해 보았을때,
d 76은 저렴하고 현상에 대한 정보들이 많다는 것이 절대적인 장점이었는데, 
그에 반해 정확한 현상을 위해서는 한번에 대량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단점도 있었지요.

그래서 그냥 이번엔 t-max용액을 사서 해볼까.. 하는 생각에
삼성사를 찾아갔습니다.

헛... 왠걸. 삼성사가 없어졌더군요.
일전에도 밖에서 깊이 들어간터라,
운영이 쉽지 않아 또 이전을 하셨나 하는 생각으로,
구글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예 접으시고,
사촌 형님께 위탁을 하셨다고 하는 내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위치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창경궁쪽으로 한 40미터 정도 가면
있는 우성상사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우성상사로 갔는데,
정말 제품들이 많이 없더군요.
필름도 대형은 없고, 중형도 많지 않고,
현상액도 d 76만 팔고
픽서도 일포드 픽서만 팔더군요....

하두 제품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hc110을 하나 사왔습니다.

그냥 앞으로는 d-76으로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나저나... 이제 정말 필름의 시대는
축소를 넘어, 소멸의 시대로 가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좀 착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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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ansurfox.tistory.com BlogIcon 만술[ME] 2011.09.28 10:23 신고

    저랑 비슷하십니다. 냉장고에서 벨비아들이 썩어가고 있어요. 안그래도 이번에 와이프의 만행(?)으로 충격을 먹어서 F6들고 뛰어 댕겨볼까 생각중입니다.
    니콘이 D3 하나 거져 주거나 F6에 디지탈 백 만들어주면 사진 다시 열심히 하겠다는...ㅋㅋ

    • Favicon of http://speedit.tistory.com BlogIcon 자랑쟁이 2011.09.29 20:57 신고

      ㅎㅎㅎㅎ.

      저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서,
      집안 행사때마다 찍사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행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긴 하네요 ㅋㅋㅋ





'작성중인 글'에 방치되어 있는 글을 정리한것입니다.
20009년 9월 19일에 올리려고 했었네요.

이날 낮에 시간을 좀 내서 옥인 아파트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옥인아파트를 철거한다는 이야기에 한번 올라가 봤지요. 상황을 보니 철거하려면 정말 한참 걸리겠더군요.

상황을 보니... 거의 대부분 나갔는데, 몇몇 분들이 계속 살고 계시더군요.

1. 워낙 오래 살고 계시던 독거 노인분들
이 분들의 사정은 그렇습니다. 이제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니 이사 가기도 싫고, 평생 살던데서 살겠다라는 생각이시고, 여기 보상금 받아서 이사해도 이사할곳도 없고, 이사간 곳에서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당장 이사가면 돌아가실것 같은 거지요.

2. 전세 살고 있다가 벼락 맞은 분들
전세 살고 있다가 주인만 보상금 받고 내빼고... 돈 십원도 못건지거나 일부밖에 못받은 사람들이 내돈 내놓으라며 버티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좀 안타깝긴 합니다. 실제로는 당장 갈곳이 없는거죠.

제가 알고 있는 경우는 이렇게 두가지인데, 사실 아파트에 한집이라도 살고 있으면,당연히 폭파가 불가능하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세금은 공중으로 날라가는 것이고, 강제로 내보내자니 정의롭지 않고... 애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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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중인 글'에 방치 되었던 글 정리한것입니다.
2009년 9월 19일에 올리려던 사진이네요.

이 곳을 따라 슬슬 걸어올라가니 상당히 좋더군요. 물론 모기가 많아서 많이 짜증나긴 했습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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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중인 글'에 있는 글 정리합니다.

2009년 9월 19일에 올리려던 사진이네요.


필름 건조가 좀 잘못되어서 얼룩도 많고.... 먼지도 많고... 크랍도 잘 안되었네요...
필름좀 정리해서 인화 하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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