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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실크로드 여행기] 2004년 8월 15일 카쉬카르 구시가지_3

by 자랑쟁이 200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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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앞에 사진에 이어...
향비묘를 갔습니다.
향비묘의 향비의 전설에 관한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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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곳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裕陵妃園寢 속에 잠들어 있는 香妃라는 여인이다. 유릉은 건륭제의 무덤이니, 향비는 건륭제의 비인 셈이다. 중국에서 부르는 정식 명칭은 容妃이다. 유릉비원침에는 36명에 이르는 건륭제의 황후, 2명의 황귀비, 5명의 귀비, 6명의 비, 6명의 빈, 12명의 귀인, 4명의 常, 모두 36명이 함께 잠들어 있는데 향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향비의 무덤이 이 동릉 뿐만 아니라 저 신강 위그르 자치구의 서쪽 끝에 자리잡은 카슈가르에도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 세상에서 무덤 두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무려니와, 여인으로서 그런 경우는 더 그럴 것이다. 물론 카슈가르에 있는 향비묘는 개인묘가 아니라, 이 지역의 전통에 따른 가족묘로서, 17세기 중기에 호자가에서 시작되었는데, 대략 호자 일족 72명이 묻혀있다고 한다. 호자는 이 지역의 종교 귀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향비묘라기 보다는 호자 가족묘라고 하는 것이 명실 상부하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향비묘라고 부른다고 한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항상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향비의 고향은 바로 카슈가르. 정설은 없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향비는 이 지역 종교귀족 가문인 호쟈 가문의 딸이었는데, 청조가 건륭제 때 군사 침략을 단행한 뒤, 청의 장군이 황제에게 선물로 바치기 위해 그녀를 사로 잡아 북경에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카슈가르에서 한 추장의 부인이라고도 했고, 또 정혼한 사람이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 여인은 22살 때(1756년?), 혹은 26살 때(1760) 청나라의 자금성에 들어온 뒤, 29세 때 사망하였다. 어떤 이는 25년간(혹은 28년간) 자금성에서 살았다고도 한다. 생활은 무척 힘들었던 듯하다. 망향병에 시달렸다는 흔적도 있다. 궁중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건륭제는 이를 위해 그곳에서 나오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을 정도였고, 그녀가 위그 르의 전통 복장도 입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으며, 특별히 그녀를 위해 위그르의 朝服까지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궁정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은 것은 독살하였거나 자살하였기 때문이이라고 한다. 자살설은 그녀 자신이 이미 정혼한 몸이었기 때문에 항상 칼을 가슴에 품고 황제의 접근을 불허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황태후가 이 사실을 알고는 그녀를 불러 들여 소원을 묻자, 죽는 것 뿐이라고 말해서 결국 별실에서 자살케 하였다고 한다. 황태후가 환관들을 시켜 목졸라 숨지 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찌 되었든, 향비에 얽힌 이야기는 청의 카슈가르 정복 과정에서 나타난 비극이고, 향비는 그에 저항한 여성인 셈이다. 때문에 그녀의 유해는 동릉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슈카르 사람들은 124명의 카슈카르 사람들이 특후한 상여를 메고 3년 반이나 걸려 북경에서 향비의 시체를 운구한 다음, 호자가의 묘에 묻어 주었다고 믿고 있다. 또 카슈가르 사람들은 요즘에도 죽은 뒤 이 향비묘 가까이에 묻히는 것을 바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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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향비묘의 입구입니다.

잘 보시면 글씨가 쓰여진 타일이4개가 있고 그것은 어떤 사람들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기억으론 이곳을 짓는데 도움을 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진 않네요.. ㅋㅋ


여기가 황비의 묘입니다. 1700년대이면 조선시대인데 우리나라의 건축양식과 비교를 하면 참으로 많이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내부의 모습인데, 저런 창들이 이 내부가 비교적 밝게 해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곳이 향비묘 내부인데, 향비의 묘는 어떤것이었는지 말씀드리기 힘이듭니다.. 단.. 저 앞에 계신분이 가르키고 있는곳이 바로 향비묘가 있는곳이라고 할 밖에 -_-;;;
그리고 상당히 특징적인것인데, 저 관처럼 생긴것들은 실제론 관이 아니라 돌로된 조각입니다. 그아래 약 2~3미터 아래 시신은 묻혀있다고 하네요.
이쪽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하거나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들의 묘는 다 저렇게 생겼더군요.


향비묘 옆에 있는 건물인데, 이 건물은 향비묘가 생기기 훨씬 전에 생겼다고 하더군요, 목제 건물이라 다 썩어가는데, 무너지려고 한답니다. (오른쪽에 기대놓은 기둥 같은것이 옆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한거라는 군요...)


왼쪽으로 좀더 들어가면 이런 건물이 있습니다. 주의깊게 보실점은 저 기둥들의 모양입니다.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모든 기둥의 모양은 다른데요. 그 이유는 각기다른 20명의 최고의 목수에게 하나씩 조각을 해오라고 해서 세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두개만 보여드렸는데... 정말 모양이 많이 다르죠?
향비묘를 본후 저희는 다시 카쉬카르로 왔습니다. 이곳부터는 구 시가지는 아니고, 바자(시장)인데요. 그들의 실질적인 생활을 엿볼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시장에 있는 일종의 공중전화라고 하는데요. 참 재밌죠?

시장에선 주로 이런 옷들을 판매합니다. 저건 아무래도 보통때 입는 옷은 아닌것 같더군요.
위구르인들은 한족과는 달리 아주 많이 속여먹고 팔지는 않더군요... 그만큼 아직은 순박한게 아닐까 합니다.

위의 사람들을 보면 저들이 보통때 입는 옷을 알수 있습니다. 보통 저렇게 입고 다니더군요.
시장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카쉬가르 구 시가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곳이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다시가자고 했죠.


참으로 순진한 웃음을 하는 소년입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참으로 좋아하더군요.이쪽엔 관광차 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관광지로 유명한 곳에서는, 꼬마들이 사진을 같이 찍어주고 돈을 달라고 난리를 칩니다. 하지만 이곳의 구석 구석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그런 문화는 없더군요...

참으로 달라보이는 골목이죠?

저 검은 연기는 무엇일까요? 불났나?? 라고 생각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이쪽에서는 아직도 석탄을 많이 태우기 때문에, 저녁때가 되면 저렇게 석탄 연기가 많이 나곤합니다. 저렇게 태워서 그런지 몰라도,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게 되면.. 좀 스모그가 앉은것 처럼 뿌연 하늘이 도시위로 보입니다.




녀석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더군요.... 이건 우리나라 전통 놀이만은 아닌가 봅니다.. ^^
여기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내일부터는 카쉬가르를 출발해서 야르칸트로 갑니다. 야르칸트에서도 인상깊은 일이 있었는데요...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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